문화와 역사
문화와 역사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거창 모리재
모리재는 1637년 인조(仁祖)가 중국 청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정온(鄭蘊)선생은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典醫)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낙향하여 죽을 때가지 은거했던 곳을 기념하여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齎舍)로 사당 · 모리재 · 서무 · 화엽루 · 내삼문 · 협문 등과 유허비 1기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花葉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또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一)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齋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