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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문화원

문화와 역사

문화와 역사

역사

조선시대

거창군의 조선시대 5.교통과 통신

ㆍ내용
거창의 역사적 변천과정

4. 조선시대

 

[교통과 통신]

조선 시대 지방에 설치된 역(驛)은 중앙 정부와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조직으로 숙박 시설인 원(院)과 함께 설치된 곳도 있어서 역원(驛院)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역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참(站)·역참(驛站)으로 불리기도 했다. 역은 국가의 정령이 전달될 뿐만 아니라, 관리의 왕래·숙박·공물의 수송·사신의 영송(迎送) 등 국가의 여러 공적 행위가 이루어진 곳이다. 조선 시대 거창현의 역으로는 읍치 서북쪽 54리[21.21㎞]에 위치한 성초역(省草驛), 읍치 북쪽 24리[9.43㎞]에 위치한 성기역(星奇驛), 읍치 남쪽 15리[5.89㎞]에 위치한 무촌역(茂村驛)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거창현의 세 역은 경상도 함양군에 소재한 사근도(沙近道)가 관할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경상도 김산군에 소재한 김천도(金泉道) 관할로 나타나, 이후 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院)은 각지의 요로(要路)나 인가가 드믄 곳에 소재한 국가 숙박 시설이다. 관원의 편의를 위해 설치되었는데, 조선 시대 거창현의 원으로는 동원(東院)·정태원(鼎台院)·고천원(古川院)·병화원(竝火院)·성기원(星奇院)·석적원(石積院)·고제원(高梯院)·성초원(省草院)·무촌원(茂村院)이 있었다. 또한 안음현의 장풍원(長風院)과 삼가현의 율원(栗院)이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에 소재하였었다. 그러나 원은 조선 후기 점차 기능이 상실되어 갔으며, 민간에서 운영하는 주막(酒幕)·주점(酒店)과 역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에 조선 후기로 접어들게 되면 지금의 거창군 일대에서 소재했던 원들도 모두 폐지된 것으로 나타난다. 역과 원은 교통수단으로도 활용되었지만, 연락을 취하는 관원들이 머무르는 곳이었고, 특히 역에서는 역마(驛馬)를 지급하며 통신을 보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적 변란과 같은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봉수(烽燧)가 중요한 통신 수단이 되었다. 봉수는 봉수대(烽燧臺)[봉화대(烽火臺)]에서 횃불[봉(烽)]과 연기[수(燧)]를 피워 상황을 알리는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전국의 봉수는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한양 목멱산(木覓山)의 경봉수(京烽燧), 남쪽과 북쪽 국경에 위치한 연변 봉수(沿邊烽燧), 경봉수와 연변 봉수를 연결하는 내지 봉수(內地烽燧)로 구분된다. 또한 봉수는 직봉(直烽)[직선 봉수(直線烽燧)]과 간봉(間烽)[간선 봉수(間線烽燧)]으로 구분하였다. 직봉은 5개가 있었는데 모두 중심이 되는 간선(幹線)이었고, 간봉은 보조선에 해당되었다. 조선 시대 동안 전국에 673개소의 봉수대가 존재했다고 하며, 봉수대는 기본적으로 해당 고을의 지방관이 관장하였다. 조선 시대 거창 지역의 봉수로는 거창현에 소재했던 금귀산(金貴山)[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주상면 소재, 지금의 금귀봉] 봉수와 거말흘산(巨末訖山)[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소재, 지금의 거말산] 봉수가 있다. 이중 금귀산 봉수는 남쪽으로 합천군(陜川郡)의 소현(所峴) 봉수와 상응하고, 북쪽의 거말흘산 봉수와 상응한다. 또 거말흘산 봉수는 북쪽 지례현(知禮縣)의 귀산(龜山) 봉수와 상응하였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거창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