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거창군의 조선시대 4.성씨
4. 조선시대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거창현의 토성(土姓)으로는 유(劉)씨·정(丁)씨·장(章)씨·신(愼)씨·주(朱)씨, 속현인 가조현의 토성으로는 사(史)씨·조(曺)씨·갈(葛)씨·유(劉)씨·신(辛)씨가 확인된다. 이 중 사족(士族)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토성으로는 신씨·유씨·장씨가 있다. 특히 거창 신씨는 이미 15세기 무렵 다수의 관인(官人)을 배출시켰고, 그 중 한 계열은 조선 전기 대표적인 훈척(勳戚) 가문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 외 안음현 토성으로는 이안현의 조(曺)씨·임(林)씨·김(金)씨·표(表)씨·하(河)씨, 감음현의 공(孔)씨·황(黃)씨·서문(西門)씨·서(徐)씨가 있으며, 삼가현의 토성으로는 삼기현의 박(朴)씨·염(廉)씨·오(吳)씨·조(曺)씨·공(公)씨, 가수현의 이(李)씨·노(魯)씨·박(朴)씨·삼(森)씨가 있다. 그러나 거창현과 달리 안음현·삼가현의 토성 중 사족으로 성장한 가문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지역에는 다른 고을 성씨가 다수 이주하여 사족 가문을 형성하였다. 한편, 거창의 가조현에는 1271년부터 1422년까지 경상도 남해에 위치한 거제현이 교우하였기에 거제의 토성들도 거창 지역을 매개로 사족화의 길을 걷게 된다. 고려 후기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도서 지역에 사람이 살기 어려워지자, 거제현의 토성 세력과 부속 역원(驛院)도 가조현 지역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이때 사족으로 성장한 가문으로는 거제 반씨(巨濟潘氏)와 아주 신씨(鵝州申氏)가 있다. 아주현(鵝州縣)은 거제현의 속현으로 고려 후기 거제현의 토성 세력과 함께 가조현에 정착하였다. 14~15세기 토성 세력의 사족화와 재경 관인화(在京官人化)는 이들의 혼인 범위를 자연스레 확대시킴과 동시에 타 고을로의 이주를 촉진시켰다. 이는 조선 전기까지 일반적이었던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자녀 균분 상속(子女均分相續)이라는 가족 제도와 상속 제도가 한 요인이었다. 반대로 타 고을의 유력한 사족이 거창에 정착해 있던 유력가의 사위로 들어가게 되고, 처가의 경제적 기반을 상속 받아 토착 세력으로 성장 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 결과 15세기 이후 다양한 성씨가 거창현에 정착하며, 유력한 재지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18세기 간행된 『여지도서』에 따르면 거창도호부의 주요 성씨로는 이(李)씨·윤(尹)씨·정(鄭)씨·김(金)씨·허(許)씨·형(邢)씨·표(表)씨·유(柳)씨·변(卞)씨·최(崔)씨·어(魚)씨·조(曺)씨·서(徐)씨·박(朴)씨·강(姜)씨·전(全)씨·문(文)씨·조(趙)씨가 있으며, 안의현에는 이(李)씨·박(朴)씨·유(柳)씨·반(潘)씨·임(林)씨·정(鄭)씨·변(邊)씨·신(愼)씨·조(曺)씨·권(權)씨·오(吳)씨·조(趙)씨·강(姜)씨·윤(尹)씨·경(慶)씨·곽(郭)씨·전(全)씨·우(禹)씨·김(金)씨·문(文)씨·신(申)씨·송(宋)씨·성(成)씨·홍(洪)씨·온(溫)씨가 확인된다. 이들 성씨는 거창 지역의 토성 세력 또는 먼저 정착한 타관(他貫)의 성씨와 혼인 관계를 맺거나, 복거(卜居) 및 낙향 등의 연유로 정착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집성촌(集姓村)을 형성하여 현재까지 가문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