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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문화원

문화와 역사

문화와 역사

역사

조선시대

거창군의 조선시대 2.행정과 군사

ㆍ내용
거창의 역사적 변천과정

4. 조선시대

 

[행정과 군사]

조선 시대 지방 통치의 기본 골간은 중앙 정부가 일정하게 구획한 군현(郡縣)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하는 군현제(郡縣制)였다. 이때 지방관은 해당 고을의 행정·사법권뿐만 아니라, 군사권까지도 행사하였다. 각 군현은 인구와 경제 수준, 군사적인 지리적 요건 등에 따라 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으로 읍격(邑格)이 나누어졌으며, 파견되는 지방관의 품계도 달랐다. 조선 시대 거창현·안의현·삼가현에는 모두 종6품의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다만 거창현은 조선 후기에 읍격 변동이 잦아, 파견되는 지방관의 품계도 달라졌다. 먼저 1728년 무신란을 계기로 거창현이 거창도호부로 승격됨으로써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었지만, 1788년 거창현으로 환원됨에 따라 다시 현감이 두어졌다. 이어 중앙 정부는 거창현의 읍격은 유지하되, 지방관의 품계를 높여 1790년부터는 종5품의 현령(縣令)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1799년 거창현이 다시 거창도호부로 승격되면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군수(郡守)가 파견되기 전까지 종3품의 도호부사가 거창도호부를 다스리게 되었다. 1485년(성종 16)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5호(戶)를 1통(統), 5통을 1리(里), 몇 개의 리를 면(面)으로 하고, 통에는 통주(統主), 리에는 이정(里正), 면에는 권농관(勸農官)을 둔다고 규정되어 있다. 각 고을의 하부 구조를 면리제(面里制)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으로 구성하여, 효과적인 대민 지배와 원활한 조세 수취를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면리제가 각 고을의 하부 구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읍치를 제외한 고을 외곽에는 속현을 비롯해 향(鄕)·소(所)·부곡(部曲)·촌(村) 등과 같은 임내(任內)가 별도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들 임내에는 별도의 토착적인 향리 세력이 존재하여, 주읍(主邑)과는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실제 면리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이후였다. 이에 면리제가 시행되었음에도 조선 전기까지 거창현·안음현·삼가현에는 여러 임내가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현재 명칭이 확인되는 임내로는 거창현의 속현인 가조현이 있다. 특히 가조현에는 1422년까지 거제현이 교우(僑寓)하였기에, 거제현의 임내였던 아주촌(鵝洲村)과 송변현(松邊縣)이 두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안음현에는 가을산소(加乙山所), 삼가현에는 면현소(緜峴所)·토촌소(吐村所)·유린서정(有麟西亭)이 있었는데, 안음현과 삼가현의 임내는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과 합천군에 각각 두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각 고을에 점진적으로 면리제가 정착해 갔다. 조선 전기 동안 임내 지역이 재지 사족에 의해 개발되고,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이에 속현·향·소·부곡·촌 등의 임내 중 규모가 큰 것은 몇 개의 면으로 분할되기도 하고, 작은 것은 하나의 면으로 통합되거나 리로 편제되기도 하였다. 또한 새로운 행정 구역의 경우, 전통적인 임내 명칭 대신, 동·서·남·북 방위명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지도서』에 기록된 거창도호부의 방명(坊名)[면 이름]으로는 동부면(東部面)·음석면(陰石面)·지상곡면(只尙谷面)·웅양면(熊陽面)·적화현면(赤火峴面)·고제면(高梯面)·주곡면(主谷面)·모곡면(毛谷面)·가을지면(加乙旨面)·천내면(川內面)·천외면(川外面)·청림면(靑林面)·고천면(古川面)·남흥면(南興面)·무등곡면(無等谷面)·고모현면(古毛峴面)·지차리면(只次里面)·하가남면(下加南面)·상가남면(上加南面)·가서면(加西面)·가북면(加北面)·가동면(加東面)이 있다. 안의현에는 현내면(縣內面)·황곡면(黃谷面)·초점면(草岾面)·대대면(大代面)·지대면(知代面)·남리면(南里面)·동리면(東里面)·고현면(古縣面)·북하면(北下面)·북상면(北上面)·서하면(西下面)·서상면(西上面)이 있었는데, 이 중 남리면·동리면·고현면·북하면·북상면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된 면이다. 또한 삼가현에는 백동면(栢洞面)·상곡면(上谷面)·아곡면(阿谷面)·문송면(文松面)·가회면(佳會面)·대평면(大平面)·고현면(古縣面)·병목면(竝木面)·신지면(神旨面)·지옥면(知玉面)·모태면(毛台面)·계산면(界山面)·현내면(縣內面)이 있었는데, 이 중 신지면과 후에 제정되는 율원면(栗院面)이 1914년 거창군에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 지방 군제는 진관 체제(鎭管體制)가 기틀을 이루고 있다. 조선 전기 진관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거창·안음·삼가 세 고을은 경상 우병영(慶尙右兵營)[조선 전기 창원(昌原) 소재, 조선 후기 진주(晉州) 소재]의 관할 아래에 있었으며, 진주 진관(晉州鎭管)의 제진(諸鎭)으로 편제되었다. 또한 군사권을 가지고 있던 세 고을의 현감은 모두 무관 종6품 외직인 절제도위(節制都尉)를 겸직하였다. 진관 체제는 임진왜란 이전 제승방략(制勝方略) 체제로 개편되었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으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에 전란 도중 속오군(束伍軍)을 창설하였으며, 17세기에는 속오군 훈련을 위해 영장(營將)이 각 도(道)에 파견되었다. 영장 제도도 진관 체제를 근간으로 개편된 것이다. 경상도는 안동진(安東鎭)에 전영장(前營將), 상주진(尙州鎭)에 좌영장(左營將), 대구진(大邱鎭)에 중영장(中營將), 진주진(晋州鎭)에 우영장(右營將), 경주진(慶州鎭)에 후영장(後營將), 김해진(金海鎭)에 별중영장(別中營將)이 두어졌다. 이 중 거창·안음·삼가 세 고을은 우영장 관할이었다. 거창·안음·삼가 세 고을은 경상도 서남부에 위치해 있어, 전라도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으며, 반대로 전라도에서 경상도 중심으로 향할 때 거쳐야 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동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거창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