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거창군의 조선시대 1.행정 구역 변천
4. 조선시대
[행정 구역 변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은 조선 시대 거창현(居昌縣) 지역과 안음현(安陰縣)[안의현(安義縣)]·삼가현(三嘉縣) 일부가 합쳐진 것이다. 거창현은 지금의 거창읍·고제면·웅양면·주상면·남상면·남하면·가조면·가북면 일대를 영역으로 하였다. 지금의 마리면·위천면·북상면은 안음현 영역이었으며, 신원면은 삼가현 영역이었는데, 1914년 거창군에 합쳐진 것이다. 거창현은 1414년(태종 14) 거제현(巨濟縣)과 합쳐져 제창현(濟昌縣)이 되었다. 거제현은 원래 남해안 도서에 있던 고을이었으나, 고려 후기 연안 도서 지역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지자, 1271년(원종 2) 내륙의 가소현(加召縣)[가조현(加祚縣)]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당시 가소현은 합주(陜州)[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의 속현(屬縣)이었다. 그러나 제창현은 1년 만인 1415년(태종 15) 거창현과 거제현으로 분리되었다. 한편, 가조현은 계속 거창현으로 있다가 1422년(세종 4) 거제현이 본 고을로 돌아가게 되자 거창현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거창현의 면리(面里)로 편제된다. 1495년(연산군 1)에는 거창현이 거창군(居昌郡)으로 승격되었다. 연산군의 왕비 신씨(愼氏)의 관향(貫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의 왕비였던 단경 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마저도 폐비가 되면서, 거창군은 거창현으로 강등되었다. 단경 왕후가 연산군 정비(正妃)와 고모·조카 사이였으며,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 반정 세력에 살해당한 신수근(愼守勤)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1658년(효종 9)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거창현에서 일어나, 강상죄를 범했다 하여 거창현은 폐지되고 일시적으로 안음현과 통합되었지만, 2년 뒤인 1660년(현종 1) 장의신(章義信)의 상소로 고을이 복구되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하였는데, 경상도에서는 안음현의 정희량(鄭希亮)이 주동하였다. 난이 진압된 후 조선 정부는 역도의 고을이라는 이유로 안음현을 폐지하고, 둘로 쪼개어 거창현과 함양군(咸陽郡)에 분속시켜 버렸다. 아울러 거창현의 읍격(邑格)을 높여 거창도호부(居昌都護府)를 설치하였다. 1736년(영조 12) 안음현이 복구되었지만, 거창도호부의 읍격은 지속되었다. 그러다 1788년(정조 12) 거창도호부가 거창현으로 환원되었다. 거창도호부가 된 것은 폐지된 안음현의 절반이 합쳐져서인데, 1736년 안음현이 다시 설치되었음에도 도호부로서의 읍격을 유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1799년(정조 23)에는 거창현이 다시 거창도호부로 승격하였다. 단경 왕후의 관향이라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단경 왕후는 중종반정으로 폐비되었지만, 1739년(영조 15년) 복위되었다. 1799년 거창현의 거창도호부 승격은 단경 왕후 복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거창도호부로서의 읍격은 1895년(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이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안음현은 이안현(利安縣)과 감음현(感陰縣) 두 고을이 합쳐진 것이다. 1417년(태종 17) 고을 명칭이 안음현으로 바뀌었다. 고을의 읍치(邑治)가 처음에는 옛 감음현 지역에 있었는데, 이때 이안현으로 읍치를 옮겼기 때문이다. 1728년 무신란 때 안음현이 정희량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고을이 둘로 쪼개져, 거창현과 함양군에 분속되었다가, 1736년 이성택(李聖擇)이 상소를 올려 안음현이 복구되었다. 1767년(영조 43) 안음현은 ‘의(義)’로운 고을이 되라는 뜻에서, 고을 명칭을 안의현으로 바꾸었다. 안의현은 1895년 안의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읍치 지역은 함양군과 통합되고 지금의 마리면·위천면·북상면 지역이 거창군과 통합되었다. 삼가현은 원래 삼기현(三岐縣)과 가수현(嘉樹縣)이었는데, 1414년(태종 14) 삼가현으로 통합되었다. 삼가현도 1895년 삼가군이 되었다가,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을의 대부분이 합천군에 통합되었고, 지금의 신원면 일대만 거창군에 통합되었다.